오랜만에 간 동묘
주말에 별생각 없이 동묘 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한동안 안 갔더니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북적였다. 파라솔이 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고, 그 아래로 옷가지며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 있는 풍경. 하늘은 또 어이없게 맑아서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데, 그 아래는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긴 목적을 갖고 오면 오히려 못 찾는 곳이다. 그냥 흘러가듯 걷다가 눈에 걸리는 게 있으면 멈추는 식인데, 이날은 그렇게 걷다가 한 좌판 앞에서 발이 멈췄다.
손에 착 감기는 물건
나무를 깎아 만든 괄사였다. 겉면이 붉게 반질거리는 걸 보니 고무나무에 옻칠을 한 물건 같았다. 집어 들자마자 “어?” 소리가 나왔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곡선이 딱 맞아떨어졌고, 무엇보다 예상보다 훨씬 묵직했다.

생김새는 이렇다. 위쪽은 완만한 아치를 그리는 손잡이고, 거기서 굵은 돌기 다섯 개가 아래로 뻗어 있다. 끝은 뾰족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세게 눌러도 살갗이 아프지 않다. 붉은 옻칠 사이로 나뭇결이 검은 줄무늬처럼 비치는데, 이게 은근히 보기 좋다.
집에 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사실 집에도 괄사가 하나 있다. 그런데 비교해 보니 차이가 확연하다. 기존 것은 가볍다. 가벼우면 결국 팔 힘으로 눌러야 한다. 몇 분 하다 보면 마사지를 받는 게 아니라 팔 운동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 산 놈은 다르다. 무게 자체가 있어서 그냥 얹어놓고 미끄러뜨리기만 해도 제 몫을 한다. 힘을 줄 필요가 없으니 오래 붙잡고 있어도 손목이 지치지 않는다. 도구가 무거우면 사람이 편해진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두피에 대봤더니
제일 좋았던 건 머리다.
다섯 갈래 돌기를 정수리에 대고 뒤통수 쪽으로 천천히 끌어당기면, 머리카락 사이로 돌기가 파고들면서 두피를 죽 훑는다. 이 감각이 정말 묘하게 좋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목덜미부터 정수리까지 뻣뻣하게 굳는데, 몇 번 쓸어내리는 것만으로 머리 전체가 가벼워진다.
기왕이면 저녁에, 씻고 나서 하는 게 제일 낫더라. 머리가 나른해지면서 잠도 잘 온다.
그 밖에 쓰는 곳
- 목뒤와 어깨 — 딱딱하게 뭉친 자리에 돌기 끝을 대고 지그시 누르면 시원하다. 여기는 힘 조절이 필요하니 조금씩 해보는 게 좋다.
- 얼굴 — 광대 아래에서 귀 방향으로, 턱선을 따라 가볍게. 얼굴은 두피처럼 벅벅 하면 안 되고 살살 밀어주는 정도로 충분하다.
- 팔뚝과 종아리 — 손잡이 부분 옆면을 써서 넓게 문지른다. 돌기 쪽보다 이쪽이 더 편할 때가 있다.
주의할 점 하나
옻칠한 나무라 물에 오래 담그면 안 된다. 쓰고 나서 마른 천으로 슥 닦아 두는 정도면 충분하고, 습한 데 방치하면 칠이 상할 수 있다. 오일을 발라 쓸 생각이라면 끝나고 꼭 닦아내는 게 좋겠다.
잘 샀다
동묘에서 산 물건치고 오래 쓸 것 같다. 이런 데서 파는 물건은 보통 몇 번 만지작거리다 서랍 신세가 되는데, 이건 다르다. 벌써 책상 위에 상시 대기 중이고, 글 쓰다 막히면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값비싼 마사지 기계를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전기도 배터리도 필요 없고, 그냥 나무 덩어리 하나인데 내가 원하는 세기로 원하는 자리를 정확히 누를 수 있다. 손으로 하는 일에는 손으로 하는 일만의 감각이 있는 법이다.
당분간은 이 녀석과 붙어 지낼 것 같다.
